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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 사진전 〈MEAN : on sight〉 도슨트 스크립트

이멩 2025. 7. 5. 16:19
  • 받쓰 특성상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 본문에 오디오 추가했습니다. (25-07-05)

 


 

 

 

Prologue

 

MEAN : on sight. 빛이 스친 순간, 마음이 멈춘 프레임.
2008년,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수많은 프레임 안에서 살아온 시간 동안, 저는 보여지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보는 일에 마음이 머물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그 마음의 흔적입니다. 그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전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빛이 닿는 골목, 그림자가 깃든 벽, 말 없는 풍경들이 저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이 전시는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과, 또 누군가의 렌즈에 담긴 저의 모습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제가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가 저를 바라봅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사이에서 저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무엇인지’, ‘왜 이 장면을 남기고 싶은 건지’. 그 질문들은 조용히 프레임 안에 스며들었고, 그렇게 이 첫 번째 사진전, 〈MEAN : on sight〉 , 지금 바로 시작됩니다.
저는 이 전시가 말없이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제 시선이 머문 장면들을 여러분들의 속도로 아주 천천히 마주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Blow, Bubble...Bloop

 

해변가의 공원, 햇살이 유난히 잘 웃던 오후였습니다. 공기 중에는 음악보다 더 가벼운 무언가가 떠다녔고, 저는 멀리서 반짝이는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그건 바로 커다란 비눗방울, 그리고 그 뒤를 쫓으며 깔깔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였습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신이 나서 달리고, 비눗방울은 태양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피어오릅니다. 마치 누가 웃음을 만든 다음 공중에 날려 보낸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게 가벼웠고, 세상은 참 단순하고 명랑하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순간적인 기쁨을 너무 빨리 흘려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찍으며 저는 다시 알게 됐습니다. 가끔은 아주 짧은 웃음 하나가 하루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걸요.

이 작품은 그저 아이들이나 거리 공연을 담은 게 아닙니다. 이건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우리를 살게 만드는지,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작은 기적 같은 풍경입니다.

혹시 여러분도 누군가의 웃음에 따라 웃어본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이 사진 속에서 들리지 않아도 느껴지는 웃음이 여러분 마음에도 가볍게 닿기를 바랍니다.

 


 

Frame Flicker

 

이 공간은 빛으로 기억을 다시 꺼내는 방입니다.

딸칵, 딸칵, 딸칵, 하고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사진 한 장이 무심히 벽 위에 걸립니다. 다음이 뭔지, 저도 잘 모릅니다. 정해진 순서도, 정해진 해석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필름들의 방식인 것 같습니다. 한 장 한 장, 가볍게 잊혀질 수도 있고, 뜻밖에 오래 남을 수도 있는.

아마 당신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진도 있을 거예요. 어떤 장면은 스쳐 가고, 어떤 장면은 가슴에 잠시 멈추겠죠. 그게 이 공간의 리듬입니다. 빛으로 떠오르고, 소리로 바뀌고. 아무것도 없는 벽 위에서 조용히, 기억이 재생되는 방식.

잠시 그대로 두세요. 다음 장면은 조금 이따가 딸칵, 하고 도착할 거예요.

 


 

The Sandy Aisle, (Go)

 

지금 여러분은 일상의 한쪽 문을 열고, 아주 좁고 고요한 해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곳은 통로입니다. 좁고 길게 이어진, 누구나 스쳐 지나갈 수 있지만 한 사람씩만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작은 바다의 골목입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넓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지만, 사실 마음은 이런 좁은 길에서 더 많이 멈추고, 느끼고, 기억합니다. 사진으로 채워진 이 통로는 바다를 향한 사적인 시선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발밑을 스치는 모래, 귓가를 스치는 바람, 그리고 프레임 너머에 담긴 기억의 파도들을 조용히 마주해 보세요.

햇빛이 이렇게 따뜻한 것이라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누구나 자기만의 바다를 마음속에 지니고 있지 않은가.

초여름의 바다는 더디게 다가옵니다. 한낮의 햇살은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해풍은 여전히 부드럽고, 모래는 그 온도도 조용히 품습니다.

이 좁은 전시 공간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당신의 내면과 자연스레 닿을 수 있도록 설계된 해안선입니다. 파도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밀려옵니다. 그 속에서 당신은 잊고 있던 감각과 시선을 되찾게 될지도 모릅니다.

 


 

Microscope of Memory

 

여긴 조금 다릅니다. 눈으로만 스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곳입니다. 사진은 작고, 여러분들은 그걸 더 작게 쪼개서 보게 될 겁니다.

빛 위에 얹힌 이 장면들은, 제 카메라가 잡아낸 가장 얇은 기억들입니다. 루페는 확대하려고 만든 도구지만, 사실은 압축된 감정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는 방식에 더 가깝죠. 어떤 장면은 너무 작아서 숨을 죽이고 들여다봐야 하고, 어떤 장면은 보면 볼수록 방향이 달라집니다. 멀리선 보이지 않던 감정도 가까이 가면 흔들립니다. 그래서 여기선 ‘보는’ 것보다 ‘읽는’ 것에 더 가깝습니다.

빛 위에 놓인 이 작은 필름들 사이에서 어쩌면 여러분만이 발견할 수 있는 조각이 하나쯤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Love Poked a Cactus

 

선인장은 침묵 속에서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냅니다. 가늘고 단단한 선이 겹겹이 쌓이며 조용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가시는 날카롭지만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선인장은 스스로를 지키면서도 자연이 만든 가장 시적인 곡선을 품고 있습니다.

그 앞에 놓인 발보아 파크의 사진들은 햇살과 그림자가 만들어 낸 조형의 장면들입니다. 아치형 기둥과 계단, 식물의 잎사귀가 드리운 그림자 하나까지 모두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곳엔 과장된 장식도, 강한 색도 없습니다. 대신 선과 여백이, 시간과 정서가 천천히 스며듭니다. 선인장의 형태와 발보아 파크의 풍경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닮았습니다. 선인장의 형태와 발보아 파크의 풍경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닮아있습니다. 절제된 곡선, 숨 고르듯 반복되는 패턴,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결까지. 이 둘이 나란히 놓여 있을 때 비로소 그사이에 흐르는 조용한 언어를 우리는 느끼게 됩니다.

해가 지기 직전, 발보아 파크 바위 위에 앉아 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붉게 물든 하늘과 그 아래 조용히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건 흐르되, 남는다’. 빛은 사라지지만, 감정은 머물고, 장면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남습니다. 이 사진이 관람객 여러분들에게도 한 조각의 고요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Color at Ease

 

보이시죠? 편하게 탁구 치고 있는 사람이 저입니다. 숙소 마당에서 햇살 좋던 날이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몸을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같이 풀리더라고요. 그때 찍힌 이 사진은 의도도, 연출도 없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저였습니다.

뒤이어 보실 수영장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젖은 머리로 햇볕을 맞으며 앉아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카메라는 그때, 그 공기를 잘 담아줬습니다. 어쩌면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요.

마트에서 찍힌 사진들도 있습니다. 선반 가득 진열된 형형색색의 물건들. 그 앞에 서 있던 제가 생각보다 꽤 잘 어울렸더라고요. 그저 물건을 고르던 중이었는데, 지금은 그 장면이 하나의 프레임이 되었습니다.

이 공간에 걸린 사진들은 제가 아무것도 아닌 시간들 속에서 진짜 편안함을 느낀 순간들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감싸고 있던 건 늘 따듯하고 선명한 색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여러분도 그 색채 속에서 잠시나마 편안함을 느끼셨으면 합니다. 혹시 지금 이 장면들 앞에 당신도 잠시 쉬어가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이 사진들이 전하고 싶었던 감정이니까요.

 


 

After the walk, We Looked Up

 

여기까지 함께 걸어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이 순간은 아직 조금 남아있습니다. 지금 계신 이 루프탑에서 내려다보이는 작고 조용한 안국의 골목은 오늘 하루의 마지막 장면처럼 느껴지네요. 너무 크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이 골목은 낯설지만 많이 따듯하고, 어쩌면 오늘 본 장면들과 조금 닮아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햇살 아래 반짝이던 창틀,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 조용히 열렸다 닫히는 문 하나까지. 모두가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빛으로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죠.

이제 저도 이 순간을 여기 어딘가에 살짝 두고 갑니다. 천천히 골목을 걸어 나가며 여러분들의 감정도 조용히 내려앉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에 또 이런 기회를 마련해 많은 분들과, 그리고 우리 샤이니 월드와 함께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